재판에 이기고도 돈을 돌려준 사람이 있었다. 1심에서 이겼는데 항소심 재판 중에 재판을 포기하고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을 때 “그럼 왜 변호사를 선임하고 돈 써가며 재판을 하셨어요?”라고 물었다. 직장암 수술을 했던 그 분은 재판이 계속되고 신경을 쓰면서 밤에 잠도 못 이루고 소화도 잘 되지 않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고 했다.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자 건강을 잃으면 재산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이런 경우 빨리 분쟁을 끝내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재판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그 분은 이렇게 얘기했다.
“계약금으로 받은 돈은 원래 내 돈이 아니었어요. 그 돈을 몰취하여 내가 쓴다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거예요”
높아서 따먹지 못한 포도가 시다고 자위해 버린 여우 이야기가 생각난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생겨나는 분쟁 속에 살고 있다. 손해를 보는 것을 죽음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되었고 양보하고 포기하기보다 서로를 공격하며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안기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자신의 몸이 병들어가고 마음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밤을 새면서 상대방을 공격할 틈을 찾고 있다.
잇몸이 들 뜬 할머니 얘기가 생각난다.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할머니를 찾아와 집 처마가 자신의 토지경계를 침범했다고 하면서 철거하라고 요구하면서 삿대질을 하였다. 할머니는 과도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잇몸이 들뜨고 부어서 치과를 찾았다. 치과의사는 이것은 변호사나 정신과 의사가 치료할 일이라고 판단하고 정신과로 보내서 치료를 받도록 하였다.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이 살다가 거친 외풍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변호사가 되어 법적인 문제를 다루다 보니 마음의 병이 더 눈에 들어오곤 한다.
“어제 밤에 한숨도 못 주무셨지요?”, “변호사님은 그런 걸 어떻게 아세요?”, “다 알죠, 저도 그래봤으니까...”
법적분쟁에는 잠 못 이루는 걱정과 근심이 뒤따른다. 법적인 분쟁에 휩싸인 사람들의 심적 고통은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생긴다. 이길 것인지, 질 것인지, 얼마나 손해를 볼 것인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다. 재판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손해를 줄이고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도록 한다면 이미 법적 분쟁의 반은 해결한 것과 같다.
패소할 수도 있다는 점, 패소하면 손해가 얼마 정도 될 것이라는 점, 그래도 해결할 방법은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점, 해결하려면 법적인 논리는 어떻게 펴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면 의뢰인의 굳었던 얼굴이 펴지는 것이 느껴진다. 실력도 좋고 승소율이 높으면 유능한 변호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변호사는 법적 고민만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패소할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하여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변호사 개업을 하니 사촌형님이 심외무법(心外無法)이라는 글을 써 주셨는데 심외무물(心外無物)의 이치를 명심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변호사 개업과 함께 칼럼을 매주 한 개씩 써서 신문에 게재하였다. 게재하는 횟수가 늘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칼럼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어떤 분은 칼럼이 재미있어 스크랩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글을 쉽고 이해하기 쉽게 써서 읽기가 편하다고 하면서 격려해 주기도 했다. 그 동안 썼던 칼럼 중 일부를 책자로 묶어 놓으려고 하니 뿌듯함보다는 부족함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어디에선가 말없이 매주 나의 칼럼을 소중하게 읽어준 독자들, 이러한 칼럼을 보고 적극 출판을 권유하여 세상에 내 보낼 수 있게 해 준 남인숙 작가님, 리즈앤북의 김제구 사장님, 항상 변함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지켜주고 있는 직원들,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 가족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서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